History
뉴튼 수도원은 1924년 독일의 성 오틸리엔 대수도원 소속의 미카엘 하인라인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설립의 주요 목적은 미국땅에 거주하는 젊은이들에게 수도승과 선교사를 함께 지향하는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도원 설립시 주보성인을 '리지외의 데레사'로 정하였고, 수도원 명칭은 주보성인의 이름을 따라 'Little flower monastery'으로 명명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수도원에 입회하여, 설립 4년 만인 1928년에 원장좌 예속 수도원으로 되었고, 1936년에는 원장좌 자치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미카엘 신부는 17년 동안 수도원의 원장으로 재직하였으며, 1947년에 차알즈 커리스튼 신부가 St. Paul's Abbey(수도원 주보성인이 ‘Little flower monastery'에서 ‘St. Paul’로 바꿈)의 첫번째 아빠스로 선출되었습니다.
차알즈 아빠스는 1966년까지 아빠스로 재직하였는데, 어거스틴 힌체스 신부가 관리원장으로 임명될 때까지였습니다. 1970년 어거스틴 신부는 공동체의 두 번째 아빠스로 선출되었고 St. Paul's Abbey의 공동체 사업은 해를 거듭하면서 다양해졌고 바뀌었습니다.
1920년대에 젊은 수도원 공동체의 주요 관심은 농업과 영적인 면에서 공동체 생활의 발전을 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소신학교가 설립되었고 이 학교는 30년 넘게 운영되었습니다.
수도원 사업은 계속해서 다양해졌으며 주요 사업 중 하나는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의 영적인 쇄신을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평화의 모후’이라는 피정집 운영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수도자들은 수도원 인근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인근 지역 성당들을 돕고, 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에게 성체를 모셔주었으며, 손님들을 환대하는 등 여러 사업에 적극적으로 일하였다. 몇 명의 수도자들은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지역으로 선교파견 되었습니다.
여전히 농업은 주요 관심사였으며 건초와 크리스마스 나무는 농장의 주요 사업이 되었습니다.
한때 80여명의 수도자들이 있었지만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성소자의 수가 격감되었고 연합회에서는 한국 왜관 수도원에 수도자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여 2001년 12월 왜관 수도원에서 8명의 수도자가 파견되었습니다.
현재 미국인 수도자, 아프리카 수도자, 한국인 수도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고 일하고 읽으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정주하고 수도승답게 생활하며 순명할 것을 서원하고 있습니다.

